소화기관은 흥미로운 장기이다. 입에서 항문까지 꼬불꼬불하지만 긴 관 모양이어서, 이 관을 지나가는 음식물과 기타 모든 삼킨 것들을 이동시키면서 분해·흡수·분비 등의 일을 한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해서, 신경계·호르몬계에 의해 밀접하게 조절되고 또 조절하기도 한다. 배가 고프면 화가 나고 화가 나면 배고픈 줄 모르는 아이러니를 다들 경험해봤을 것이다.
장은 몸 바깥에서 들어오는 음식물과 각종 미생물들을 대응하는 장기인 만큼 면역계와도 아주 밀접하다. 그래서 면역체계가 망가지면 장 트러블이 일어나기도 쉽다. 또한 장내에 사는 미생물들은 평생의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몸의 일부라고 할 만도 하다. 이 공생 미생물과의 상생을 조절하는 것 역시 장이 해야 하는 일이다. 이렇게 다양한 역할을 소화기관이 한다는 점을 더 발견하면서, 우리의 건강한 삶에 장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에 더 많은 연구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장 오가노이드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 우리가 모르던 많은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고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인간 장 오가노이드 동물 이식하면
장 오가노이드는 짧은 오가노이드 기술의 역사에서 가장 긴 편에 속한다. 장 표면의 상피세포는 끊임없이 재생하고 장 안쪽의 표면적을 넓히기 위해 구불구불한 돌기들을 만들어낸다. 장 상피를 재생하기 위한 성체줄기세포가 많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나 실험동물로부터 채취한 장 조각을 배양기에서 키우면, 성게 모양의 독특한 3차원 구조체가 만들어지는 것은 비교적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장 오가노이드는 그 장기를 구성하는 세포들이 장기의 독특한 모양을 형성하는 3차원 구조체다. 그 모양이 독특하다는 점은 연구자가 쉽게 성공 여부를 판정할 수도 있고 모양이 주는 아름다움은 관심을 끌기에도 충분하다. 이 ‘예쁜’ 장 오가노이드가 오가노이드 기술 개발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장 오가노이드를 배양하면서 어떻게 하면 몸속의 장과 비슷한 돌기가 완벽하게 만들어지는지 찾아내는 과정은, 바로 그대로 우리 몸의 장 재생 과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모든 장기는 끊임없이 세포가 파괴되고 새 세포가 보충되는 재생 과정을 거친다. 복잡한 신경·호르몬·공생세균·면역계가 다 섞여 있는 동물을 대상으로 인간 몸의 장 재생 과정 조절 방법을 연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장 오가노이드를 이용하면 이러한 복잡한 요소들을 통제하기 쉬워질뿐더러, 똑같은 오가노이드를 한꺼번에 많이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한번에 여러 요소들이 미치는 영향을 하나하나 구분해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장 오가노이드 기술을 개발한 선구자로는 단연 네덜란드의 한스 클레버르스 박사가 꼽힌다. 2009년 장 오가노이드를 최초로 만들고 오가노이드 기술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람이다. 클레버르스 박사의 장 오가노이드 배양을 시작으로 여러 중요한 연구 성과가 이어졌다. 2014년 미국 신시내티대의 마이클 헬름라스 연구팀은 인간 장 오가노이드를 동물에게 이식하면 정상적으로 기능한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했다. 이러한 연구는 발전되어, 2020년 영국 크릭연구소의 비비언 리 연구팀은 장 질환 소아에게 장 오가노이드를 이식하여 질환 치료가 가능함을 보였다. 장 오가노이드는 그 크기가 매우 작아 전체 장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작은 오가노이드를 하이드로젤 같은 이식용 소재와 섞어 손상받은 장에 이식하면, 작은 오가노이드들이 장에 붙어 기능 개선 치료 효과를 보인다는 개념을 증명하였다.
이런 선구자적 연구 덕분에 장 오가노이드 이식은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오가노이드 이식 개념은 다른 장기로도 확장되어, 피부이식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한 임상시험이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