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필 수석 역임 김홍박
브람스·슈만 곡으로 첫 음반
13일 예술의전당서 독주회
지난해 서울대 음대 교수로
"후학양성,연주만큼 희열"
호른은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 중 하나다. 둥그렇게 휜 관을 통해 나오는 중음역 소리는 사냥꾼의 호기로움을 과시하기도,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보듬기도 하며 다양한 감정을 전한다. 곡의 하이라이트는 물론 여러 소리를 어우러지게 하는 배경음에도 쓰이는 중추다. 밸브 없이 하나의 관을 꼬아 만든 '내추럴 호른'에서 오늘날 쓰이는 '밸브 호른'으로 개량된 건 19세기 초. 이 혁신의 시기에 서로 다른 선택을 한 '개혁파' 슈만과 '보수파' 브람스의 곡으로 정규 음반을 녹음한 호르니스트 김홍박(43)은 2일 매일경제와 만나 "악기 개량의 역사를 알고 노래를 들으면 작곡가가 기대한 소리에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소개했다.
예를 들어 1849년 작곡된 슈만의 '아다지오와 알레그로'는 밸브 호른을 위해,1865년 만들어진 브람스의 '바이올린,호른,피아노를 위한 삼중주'는 내추럴 호른을 위해 쓰였다. 김홍박은 "슈만의 곡에는 새로운 악기를 신기해하면서 한 음 한 음 탐색하듯 소개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나타난다"며 "반면 브람스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연주하는 내추럴 호른을 듣고 자랐고,악기 본연의 소리가 주는 가치를 중시했다"고 짚었다. 특히 브람스는 돌아가신 모친을 추모하기 위해 곡을 지었다. 밸브 호른에 비해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를 내는 내추럴 호른을 택한 배경에 곡의 주제가 담겨 있는 셈이다. 김홍박은 "이런 내용을 모른 채 연주한다면 정확한 표현이 아닐 것"이라며 "듣는 분들도 한 음 한 음이 갖는 의미에 집중해 감상해보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곡들을 포함해 음반과 같은 구성으로 오는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김홍박은 '금관 불모지'로 여겨지던 한국 클래식의 한계를 뛰어넘고 세계 무대에서 활약해온 연주자다. 2007년 26세에 정명훈이 이끌던 서울시립교향악단에 발탁됐고,이후 유럽으로 건너갔다. 특히 마리스 얀손스 등 마에스트로들이 거쳐 간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에서 2015~2023년 호른 수석으로 활동했다. 그러다 지난해 아내,세 아들과 함께 귀국해 서울대 교수로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이번 음반은 고국에서 교육자로서의 새 출발,호른과 함께해온 30년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다. 그는 "전 세계의 공연장에 연주하러 다니며 느끼던 희열이 그립긴 하지만 제가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가 된다는 걸 느낄 땐 그에 못지않은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이번 음반을 통해 듣는 이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외국 여행길에서 바깥 풍경을 보며 많은 영감을 받듯,내 생각과 가치가 다른 사람에게 닿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감정을 악기로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호른은 소리를 내기도 어렵고 아주 예민해서 긴장된 호흡에도 바로 반응해요. 다른 선율의 배경이 되기도 하니 흔들림이 없어야 하지만,흔들림이 많은 악기죠. 그런 만큼 연주자의 감정 변화에도 잘 반응한답니다. 그 어느 악기보다 연주자의 내면과 목소리를 잘 표현할 수 있죠."
그는 실력파 오케스트라,유수의 지휘자를 거친 경험에서 배운 것으로 '존중'을 꼽았다. "특히 클라우스 메켈레(현 오슬로필 상임 지휘자)는 젊은 나이에도 한 사람 한 사람과 호흡하는 게 잘 느껴졌다"고 했다. "동료 연주자나 지휘자가 금관악기를 '틀리기 쉬운 악기'라고 바라보면 연주자는 위축되고 음악 전체를 생각하기 어려워져요. 그런데 오슬로필에선 연주에 대해 '좋다'고 평가하기보다 항상 '감사하다'고 인사했어요. 틀리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상대 연주를 가슴으로 듣는 문화죠."
그는 앞으로도 교육자이자 연주자로서 국내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최근 공사 중이라 연습실이 부족한 학교 상황을 고려해 교수실을 학생들에게 개방했는데 "아이들이 편하게 오가며 질문하거나 토론하기도 한다"며 웃었다. "전 음악에 있어선 슈만보단 브람스에 가까워요. 그 가치를 완벽하게 알기 전에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 잊기 너무 쉽다고 생각하는 '보수파'죠. 그렇지만 사람 관계에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제가 받았던 다양한 경험과 영감을 학생들에게 주고 싶어요."
[정주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