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웅 연출 '칼로막베스'
국적불명 미래수용소 배경
냉혹한 권력 투쟁 실감 묘사

연극 '칼로막베스'의 한 장면. 막베스의 처 역의 김준수(오른쪽)는 창극단 이후 첫 연극 무대로 고선웅 연출의 작품을 택했다. 마방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를 언어유희와 무협액션을 담아 탈바꿈시킨 액션활극 '칼로막베스'가 서울 남산에 돌아왔다.
고선웅 연출이 이끄는 극공작소 마방진의 2010년 초연작 '칼로막베스'가 극단 창단 20주년을 기념해 16년 만에 국립극장 하늘극장 무대에 올랐다. 초연 당시 단 3일의 공연으로 이듬해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이다.
'칼로막베스'는 권력 찬탈을 위해 자행된 살육극의 무상함을 담았다. 배경은 중세 스코틀랜드가 아닌 먼 미래,강력범과 무정부주의자들을 격리해둔 수감시설 '세렝게티 베이'다. 왕과 귀족 대신 구제불능의 악당들과 반동 분자들이 무대를 가득 채운다.
조직 보스의 신임을 받던 서부구역장 막베스가 노승과 맹인술사의 예언에 혹해 권력 찬탈에 나선다는 큰 줄기는 원작을 따르되,권력의 허상을 일깨우는 불교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을 더해 선과 악이 결국 함께 소멸한다는 세계관을 담았다.
제목을 보면 공연이 보인다. '칼로 막 베는 막베스'에서 따온 이름처럼,화려한 액션 장면이 공연 전반을 관통한다. 초연부터 주연 막베스 역을 맡은 배우 김호산은 검도·택견·유도·합기도 등 무술 도합 10단의 유단자로,이번 재연에서는 무술감독까지 겸한다.
김호산을 비롯한 배우들은 긴장감 넘치는 일대일 결투는 물론 집단 난투까지 냉혹한 권력 투쟁의 살육극을 실감나게 그린다. 3면이 개방된 하늘극장의 원형 구조를 살려 배우들은 관객 출입구까지 넘나들며 입체적인 액션을 선보인다.
말장난이 담긴 제목에서 알 수 있듯,액션 틈새를 채우는 것은 배우들의 쉴 새 없는 언어유희다. "칼 있으마" "막싸스의 시대다" 같은 말장난이 수시로 끼어들고,방백 도중 칼에 맞은 배우가 "방백이었는데…"라며 무너지는 메타적 개그도 등장한다. 배우가 느닷없이 "동아연극상 수상작!"을 외치며 자기 PR에 나서 관객의 헛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자칫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 대사들은 배우들의 연기력 위에서 오히려 권력의 무상함과 비극을 더 짙게 강조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번 재연의 가장 큰 화제는 '막베스의 처' 역의 소리꾼 김준수다. 국립창극단을 떠난 뒤 처음 선택한 무대가 '칼로막베스'다. 온몸을 붉은빛으로 치장하고 등장해 막베스를 부추기고 조종하는 팜 파탈을 소화한다. 창극 무대에서 '트로이의 여인들' '패왕별희' '살로메' 등을 거치며 다져온 여장 배역 연기력이 연극 무대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27일 막을 올린 공연은 오는 15일까지 계속된다.
[구정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