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20주기 … 가고시안 특별전 '백남준: Rewind / Repeat'
"미래엔 뉴욕의 전화번호만큼
수많은 TV 채널이 생길 것"
백남준의 예언 오늘날 현실로

백남준의 '런던과 해외를 위하여(우편함)'. 가고시안
백남준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그의 작품들이 서울에서 잇따라 공개되고 있다. 가고시안은 국내 미공개작을 포함해 비디오아트의 기원을 증명하는 초기작을 선보이며,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소장품전에서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 출품된 '콘-티키'를 공개한다.
글로벌 갤러리 가고시안이 백남준 에스테이트와 손잡고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 1층의 소규모 프로젝트 전시 공간 'APMA 캐비닛'에서 특별전 '백남준: Rewind / Repeat'를 진행 중이다. 우편함 형태 나무상자 안 모니터에 TV 방송이 송출되는 '런던과 해외를 위하여(우편함)'는 국내에 처음 공개된다. 전 세계에 단 세 점만 남아 있는 작품으로 미국 휘트니미술관과 영국 테이트모던이 한 점씩 소장하고 있다. 모니터에서는 현재 국내 방송사의 실시간 영상이 송출된다. 1980년대 당시 작가가 천착했던 소통의 의미를 오늘날의 관객에게 다시 묻는 장치다.
백남준이 음악가에서 미디어 아티스트로 전환하던 시기의 초기작 '미디어 샌드위치'도 한국 관객을 처음 만난다. 인쇄물과 레코드를 결합해 비디오아트의 기원을 보여준다.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이 1969년 퍼포먼스에서 착용했던 '살아 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도 눈길을 끈다. 투명 비닐 속옷에 소형 흑백 텔레비전 두 대를 내장한 이 작품은 연주되는 소리에 따라 화면 이미지가 변하도록 설계됐다. 기술과 신체,예술의 결합을 시도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의 큰 조카이자 백남준 에스테이트 대표인 하쿠다 겐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전했다. 하쿠다 대표는 "삼촌은 제 어머니께 '아이에게 TV를 많이 보게 하고 더 좋은 TV를 사주라'고 말할 정도로 미디어에 열린 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 시절 삼촌과 함께 산책하던 일,뉴욕타임스에 처음 삼촌의 이름이 실렸을 때 '이 지면에 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줄 아느냐'며 내게 자랑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그는 백남준의 예술적 동료였던 무어먼과의 일화도 소개했다. "18세였던 내게 무어먼이 'TV 브라' 착용을 도와달라고 했는데,이를 알게 된 삼촌이 '어떻게 어린아이에게 그런 일을 시킬 수 있느냐'며 크게 화를 냈다"는 것이다. 전위적 작업 이면에 있는 그의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백남준의 '콘-티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같은 건물 지하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특별전 'APMA,CHAPTER FIVE'에서도 백남준의 대작들이 기지개를 켠다. 거대한 거북선 형상의 '콘-티키'는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특별전 이후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기술과 생태적 환경의 공존을 탐구한 '절정의 꽃동산'은 20여 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전자기기를 조합해 강아지 모습으로 구현한 '감시견Ⅱ'는 스피커가 귀가 되고 카메라는 꼬리가 된 모습을 통해 오늘날의 감시 사회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닉 시무노비치 가고시안 아시아 매니징 디렉터는 "백남준은 미래에 뉴욕 전화번호부의 번호만큼 수많은 TV 채널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며 "실제로 지금 우리는 인스타그램,유튜브,틱톡 등을 통해 누구나 자기만의 채널을 갖고 있다. 그는 미래를 예견한 선지자"라고 말했다. 비디오아트를 넘어 디지털 시대를 예견했던 백남준의 실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가고시안 전시는 오는 5월 16일까지,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전시는 8월 2일까지.
[정유정 기자]